석유 증발

이사 왔더니 석유통에 등유가 가득 차 있었다 세 드럼인 것 같았고 나도 이사 올 때 석유를 많이 가져왔다 화목으로 난방을 바꾼 뒤에 석유를 쓸 일이 없이 잊고 있었다 말통이라 그러나?  플라스틱 용기 여럿에 담아뒀는데 세 통에서 석유가 없어지고 있었다 한 통은 거의 바닥, 다른 통은 중간, 나머지 통은 많이 줄어있다 뚜껑이 그런지 어디서 새는지 모르겠다 석유통에 철사를 넣어 확인하니 반 정도 없어졌다 한 드럼에 17 만원이라면 약 25 만 원 어치가 사라졌다 뚜껑 틈으로 증발할 수도 있고, 통에서 흐를 수도 있고 밸브가 완전히 잠기지 않을 수도 있고, 고무 호스에서 증발할 수도 있겠다 앞으론 통에 담아 한 달 쓸 만큼만 사다 쓰려고 한다 전에 행주대교 살 때, 주인집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다 어느 날 딸 가족이 그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그 집 사위가 그 집 석유통에 금을 긋기 시작했다 내 석유통엔 석유가 거의 없다는 게 수상했던 모양이다 그 집에 쌍둥이 아들 둘, 할머니, 사위, 딸이 이사 왔고 원래 혼자 살던 할아버지까지 나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는 언제 이사 갈지 모르므로 항상 퇴근 때 석유를 사다 썼다  한 이틀이면 다 쓴다 그 사람들 석유도 아들이 김포공항 근처에서 석유집을 하므로 그냥 갖다쓴다고 했는데 눈치가 보였는지 나를 공동의 적으로 만들고 회의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생각나서 로드뷰로 그 집을 찾아보니 없어졌고 공터만 크게 생겼다 행주대교 집 근처에 있는 차도 못 다니는 계단 골목에 무슨 '학교~'인가 올드 스쿨인가 하는 카페 집에 갔었는데 무슨 높은 양반만 오는 곳이라고 해서 다시는 그 집에 안 갔다  파주에도 식당이 새로 생겼는데 여주인이 나오더니 거긴 또 넥타이 맨 사람만 온다고 해서 다시 못 갔다  거긴 공장 근로자들만 가는 식당이다 파주에서 문산 쪽으로 가는 곳에 있던 2층짜리 식당이었는데, 파주도 변화가 많아 찾을 수 없었다 영태...

해체

자신을 해체 하는 생명체는 없다 해체 하기 전 어떤 메시지를 남기기는 하겠지 사회에 속하면, 사회의 주동자들의 배설물을 온 몸에 바르고 스스로를 사회에 도전하지 못 하게 마취하며 일류 대학을 나오고 법을 판별하는 자가 되어 사회를 호령하게 하는 삶을 지낸다 이 의지는 상속되고, 화폐를 만들어 부를 쌓게 한다 태양의 온기를 여름에 쌓아 겨울에 쓸 수 없지만, 화폐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대신, 모처럼 생명으로 태어나서 나를 분실하게 된다 나는 나 같은 것처럼 살아냈지만 그냥 사회의 배설물로 시간만 채우다 사라진다

시간의 고통

아무 활동을 하지 않으면 지루해서 견디기 어렵다 활동하도록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dna 때문이다 모든 쾌감은 나의 것이 아니다 같은 논리로 우주에 내 소유는 없다 내게는 생각할 여유가 조금 있다 그 생각은 나의 소유인가?  그 것도 아니다 고속도로의 아스팔트 한 조각 같은 게 나의 소유처럼 인식되어진 쾌감이다 나는 쾌감 때문에 어떤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지만 어떤 성취물도 나의 것이 아니다  마치 나의 것을 내가 설계하고 이룬 것처럼 내가 마취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 어디에도 나는 있지 않으면, 내일 아니면 100 년 뒤에 지상의 행동을 멈추는 것도 다른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존재를 위해 흡수되고 응집 되어 같이 움직이다 반드시 분해된다 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잎 하나이거나 나이테 한 부분에 속한다 타생명을 가두어 기르는 것은, 내 생명의 불안감을 덜어버리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고 터널을 통과한 것처럼 자기 생명을 뱉어낸다  어찌 생각하면 먹어치운 나의 생명이 아니라, 먹힌 생명을 대신 살아낸 것과도 같다 나의 몸은 나의 정신의 충복이지만 나의 정신은 몸에게 고마워 하진 않는다  몸과 마음이 분해될 때까지 사악한 행동의 터널을 들어가면서 시간의 고통을 잊는다

the lost

해가 떨어질 때, 차 앞 유리창 위로 가벼운 게 떨어졌다 와이퍼 위에서 움직였다 화장지 한 칸 반을 뜯어와 그 자리에 다시 와보니 다른 모습 같았다  화장지를 접어 그 사이에 벌 한 마리를 끼워 주방에 그대로 두었다 두 시간 쯤 지나 잠에서 깨어 입금을 세 번 불어보니 다리가 움직였다  그 뒤로 이틀 지난 지금까지 움직임이 없다  그 전에 자세를 약간 바꾼 것 같이 보였다 봄 철에 많은 벌들이 나와 죽는다 이 벌이 살아돌아가면 반겨줄까?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추궁 받지는 않을까? 업무가 다른 벌에게 맡겨졌다면 돌아가도 할 일이 있게 될까? 이 벌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 중일까? 나는 내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 하게 되었다 시민의 소모품으로 궂은 의무를 철저히 수행해야 하고, 권리는 철저히 짓밟히는 인생을 살아왔다 재벌의 돈은 0원으로도 나라의 반 이상을 살 수 있겠고, 나는 100조원으로도 없느니만 못 한 재산을 누리고 있다 인간의 사악함은 되돌릴 수 없고 누굴 위해 글을 남긴다는 것도 쓸 모 없는 일이다 누구도 좋은 일을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악마를 만들고 있다 작은 벌레가 모은 식량을 강탈하는 인간은 사악하다  그 꿀도 진짜 꿀을 평생 보며 사는 사람도 없다 꿀에 이쑤시개나 나무 젓가락을 꼽아 쓰러지지 않으면 진짜 꿀이다  이런 꿀을 본 사람이 있는가? 인간을 잊을 때가 됐다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안 가장 정직한 단어의 배열이다 ...... 인간은 주변의 인간을 나쁘게 평가하며 사회를 스스로 오염되게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 환경이 좋아질 수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다음에 적기로 하고 오늘은 우주에서 숨 쉬고 있는 나에 대해서만 적으려 한다 나는 어쩌다 나의 몸을 이끌고 다니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부조리하다 더구나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다  생명체 중 가장 비도덕적이고 정의감이 떨어지는 게 인간인데 맨 정신으로 버텨내기도 힘들다 어느 날 문득 나, 나는 영혼이 떠돌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 것은 우주의 기본 물성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득 나인 지금, 지금 이 기억을 다시 기억할 수 없다고 해도 또 다시 나로 태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나무로, 꽃이나 새로 다시 태어난 나라면 어찌 해야 하나? 지금의 '문득 나'는 생명이 재생산 된다해도 견뎌내야지 어쩔 수 없게 된다 생명은 성취도 아니고 시간을 미끄러져 가는 행위체다  쾌감은 자극 부분을 터치해서 느끼는 감각의 작용일 뿐, 그러한 감각들이 많이 중첩된다고 생의 의미를 간직할 수는 없다 이 우주에서 나는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본 물성

사촌이 한참 뻐긴 뒤에 이런 말을 한다 제시한 것도 아니고, 있는 사람 앞에서 중얼거리던 말이다 답을 들을 가치가 없고, 그 말이 정당하다는 어투다 그런데, 정당? '내세가 없다는 게 말도 안 돼'  기본 물성을 모르는 말이다 평생을 이런 사람들만 만나고 대화하고 화내면서 살아왔다 국민학교 4학년 담임이 교생 때 여학생을 인솔하여 소록도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한다 배에 타고 옆 사람을 보니 얼굴의 한 부분 (콧등이나 귓등)이 없더란다  그래서 학생에게 이야기 하고 다른 쪽을 보니 그 쪽도 한 부분이 없더란다 단어를 이렇게 나열하면서 이제 나는 그 의미를 찾지 못 한다 누굴 위해 쓰며 뭘 쓰느냐가 다 뜻 없어졌다  보람이 없단 말도 아니다  할 이유가 없다  찾으려는 자는 스스로 찾아내고 눈 돌리는 자는 먼 길을 돌아다니다 인생을 마감한다  뭘 하든 또 뭘 안 하든, 그 인생도 아무에게도 소유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하나 같지만 분명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고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위해 이유 없이 봉사한다  즐거운 것이 나의 소유가 아니면, 고통도 나의 소유가 아니다 존재는 늘 어딘가에 존재하고, '나'가 누구냐면 모두 손을 든 그 각자가 존재다  그런데 그 존재가 무생물과 어떤 구분의 의미가 있는 지는 존재의 감정 속에서만 잠깐 번쩍이다 사라진다

오늘 하루

약 10 년 전엔, 농협 인터넷 뱅킹으로 입금 시키고, 두 달에 한 번 충주 롯데마트에서 물건을 사왔다 인터넷 뱅킹이 위험한 걸 알고, 사용하지 않았고, 누가 같은 방법으로 내 통장에서 돈을 빼내 쓴다해도 농협을 포함해서 한국 어디에서도 내 돈을 찾아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  경찰, 119, 의사들을 나는 일본인보다 믿지 않는다  국민은행에 갔는데, 세월이 갈 수록 사람들이 자기 얘기들만 한다  같은 얘기를 세 번 씩 해줘야 그 때야 생각 좀 해줄 만 한가보다  전 날 우체국에 가서 범용공인인증서를 만들려고 갔는데, 범용공인인증서 만드는 사이트에서 가입한 다음 서류를 갖고 오면 우체국에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뭘 만들어 준다는 말일까?  그 때 번호표를 뽑았는데 사람도 없는데 호출을 하지 않고 직원이 코만 풀고 있었다  번호표를 다시 뽑을까까지 망설이다  호출되어 갔는데 물론 사과 말씀은 없으시고 옆 창구로 가란다  번호표 다시 뽑고 옆에 갔더니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이다  면사무소 근처 우체국에 갔더니, 우체국이라 할 수도 없고 업무가 그냥 우체통 수준이었다  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제일 큰 우체국에 갔다가 되돌아 온 것이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하나은행이나 국민은행에서 뭘 만들어 와야 한댄다  이 지방은 하나은행 검색이 안 되어 국민은행을 갔는데, 이 내용을 직원이 모른다  칸막이가 된 곳이라 자기 업무가 아니어서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계좌를 만들고 국민은행 인터넷뱅킹이 가능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냥 나오고 싶었다  요즘은 이렇게 대화가 안 되는 곳이 너무 많아만 간다  직원 이야기는 내가 농협 계좌가 있고 농협 인터넷뱅킹이 되는데 뭐 하러 국민은행까지 와서 계좌를 만드느냐로 해석될 만한 말을 해줬다...